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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feeds every bird but doesn't put it right in its nest!

오랜만에 마음을 뻐렁치게 만드는 영화를 봤다. 글을 쓰지 않고선 못배기게 만드는 영화.

현대적 의미로 다시 그려진 21년 버전 인어공주다. 물 속에서 사는 반인반수 소년이 육지의 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별로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는 스토리에서 돋보이는 점은 '다름'을 대하는 태도다.

 

뻔한 스토리라면 루카의 바다괴물로서의 정체가 들통남과 동시에
루카는 시련을 겪고, 상처를 받고 다시 그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려냈겠지. 

경기 중 비가 내리는 바람에 루카의 본 모습이 탄로나는 가장 극적인 장면에서, 마을 사람들은 루카를 '루카' 그 자체로 받아들였다.
본인들이 정의한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인물임에도 본인들이 그동안 알고 겪어왔던 루카, 그 자체로만 인물을 평가했다. 

이 영화에서 루카가 본인의 '다름'으로 인해 겪는 갈등은 없다. 갈등이 없으니 다름을 극복해나가는 과정도 없다.

 

바로 그 점이 루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인어공주는 인간의 다리를 얻는 대신 목소리를 잃었다. 
다름 그 자체를 인정받는 것이 아닌, 다름을 숨기고 주류에 동화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루카는 인간과 바다괴물 둘 중 하나의 모습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었다. 바다괴물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 해주는 마법의약을 먹지도 않았다. 바다괴물 모습이 드러났다고 감옥에 갇히지도 않았으며 핍박받지도 않았다. 마을 안에서 루카는 그냥 루카일 뿐이었다. 본인의 모습 그대로 마을의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고, 제노바에 있는 학교에 간다. 루카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은 유일한 인물 에르꼴레는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다. 

 

외모, 성별, 성정체성. 사회 갈등 논제의 핵심은 주류에서 벗어난 '다름'에 있다. 루카의 underdog 집단. 루카는 사회가 underdog을 대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다름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게 아니라, 다름 그 자체를 포용하는 사회의 모습을 제시하는 루카.

가장 2021년다운 인어공주의 재해석이지 않나 싶다. 

 

스토리 얘기만 주구장창 늘어놓았는데, 영화 속 작화는 물론이고 지루할 틈 없는 웃음코드. 그리고 루카의 To Be 모습을 스케치로 보여주는 마지막 엔딩크레딧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황홀한 영화였다.

 

픽사의 영화들은 다 보고 나오면 마음이 하얀색 도화지마냥 깨끗해지는 기분이 든다. 바깥의 모든걸 사랑으로 바라보게 되고, 항상 머리 위에 떠있는 태양과 길거리의 나무들마저 소중하게 느껴진다. 당연한 것들에 다시 한번 의미를 부여해주면서 세상을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주기적으로 보면서 인류애 충전해야 하는 영화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