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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feeds every bird but doesn't put it right in its nest!

사실 오랜만은 아니고 

그동안 일만 호다닥 끝내고 닫아 버리기 일수였는데 오늘은 그냥 타닥타닥 글좀 써 보고 싶어서 일기장을 켰다.

내가 일기를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나의 현재 상태를 점검해보기 위함인데

일기를 찾게 되는 순간들이 으레 그렇듯 요즘 나의 상태는 정말로 좋지 않다.

몸 곳곳에서 신호를 보내는 게 느껴진다. 누군가 내 머리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뇌를 움켜쥐는 것만 같은 두통, 꼼짝않고 누워만 있고 싶은 무기력증. 가만히 있다가도 이유 없이 별안간 화가 치솟는 예민증. 피부 트러블과 불규칙한 생리 주기. 짜증 섞인 잠꼬대. 평일 새벽엔 잠못이루고 주말 낮엔 내리 잠만 자는 비정상적 수면패턴.

하나하나 뜯어본다면 나쁘지 않은 일상들의 연속인데, 그 순간 속에 존재하는 나는 말 그대로 그냥 견디는 중인거 같다.

무엇을 견디냐 하면 이유 모를 불안감과 짜증과 억울함을 견딘다.

이유를 알면 해결 하려 노력이라도 할텐데 정말로 그 이유가 뭔지 알 수 가 없다. 이유 없이 불쾌하고 이유 없이 기분이 나쁘고 이유 없이 아프다.

하고 있는 게 고작 견디는 것.

스트레스 해소법이야 수만가지 있다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건 해소가 아닌 해결이다. 스트레스를 저 수면 아래로 숨겨버리는 것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그 무엇 무엇의 정체를 밝혀내 다시는 이런 상태에 빠지지 않게 대비하는 것 말이다.

문득 든 생각이 어쩌면 이 모든 부정적 감정과 불편함의 원인이

있지도 않은 원인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데서 기인한 걸까 싶다.

굳이 파고들지 않아도 될 것까지 혼자 계속 파고드니까 답 없는 문제를 어떻게든 답을 마련해보겠다고 붙들고 있으니까. 그래서 힘이 드는 건가.

가만히 있을 때 행복한 기억이 불쑥 떠오르면 참 좋을텐데, 안타깝게도 내게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건 잊고싶은 기억들 뿐이다.

괴로웠던 기억 누군가를 싫어했던 기억 그 싫어했던 누군가가 싫어하는 행동을 했던 기억. 그 때 느꼈던 감정들. 그 사건이 있었던 구체적인 장소. 함께 있었던 사람들.

사건에 대한 기억력이 좋아서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전부 머릿속에 저장해두는게 어쩌면 그게 내가 항상 불편함에 시달리는 이유 같기도 해.

나는 12살 초등학교 화장실에서 정XX이 내게 했던 말을 화장실 배경, 그 애의 말투, 억양, 그 말의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기억하고 있잖아.

어른 되고 만났던 가장 또라이 임XX이 빻은말을 했던 정황, 어디를 가는 차 안이었는지, 우리가 그 자리에 왜 모여있었는지, 그 자리에 누가 있었는지, 장소, 시간, 먹던 음식, 내가 시킨 음료, 그리고 그 자리를 피하며 댔던 핑계까지도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